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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2015.01.08 19:51



















언제나 그랬던것 같다. 무슨날이거나 기념일 같은게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 허무한건지 그저 빠르게 잊혀진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다. 별다를게 없는 일상은 반복된다.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은 실비가 치즈가게를 보여주겠다며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빠르게 채비하고 졸졸 뒤를 쫒는다. 연휴라 거리는 한산하다. 중심가로 향하며 아히시아와 에밀리가 다니는 학교와 유치원을 지나쳐간다. 치즈가게가 열었을지 잘 모르겠다던 실비의 생각은 적중했다.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실비는 파티시에 가게로 향했다. 말도안되게 달콤해 보이는 쿠키들과 마카롱, 케익이 즐비했다. 군침만 삼키고 있는 나를 보며 실비는 케익 하나를 직접 고르라고 한다. 머뭇거리다가 초콜릿 가득한 케익 하나를 가리켜본다. 실비는 마카롱도 종류별로 사고 쿠키도 몇 가지 고른다. 마치 엄마손 잡고온 어린아이가 된 듯하다.


집으로 돌아와 실비는 점심을 준비한다. 벌써 몇끼를 앉은채 얻어먹는건지...어제 불고기도 안했더라면 나는 완전 민폐남 될뻔했다. 도와줄꺼 없냐며 묻는말에 실비는 당연한 듯이 괜찮다는 말로 답한다. 점심은 스테이크다. 부드러운 크림소스에 감자와 버터를 곁들인 점심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식탁에서 한껏 여유로웠다. 


오늘은 하루종일 프랑스어 공부다. 그 동안 미뤘던 단어도 익히고 기본 동사들을 다시한번 익히며 활용해 본다. 그래도 아직도 헷갈린다. 아히시아와 실비가 옆에서 틈틈히 도와주고 발음을 개선해준다. 활용면에선 아직도 한참 뒤떨어지지만 이젠 알파벳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다. 이것만 해도 큰 성과 아닌가 싶다...생각해본다. 금세 저녁이 됐고 벨기에에서 온다는 친구는 아직도 도로위를 달리고 있단다. 저녁 10시나 되야 도착한다는 말에 우린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고 저녁시간에 가볍게 오전에 사왔던 마카롱과 맥주로 허기를 달랬다.


어제 남은 불고기를 포함해 저녁 준비를 모두 마친 실비는 10시가 넘어서도 안오는 친구를 한참동안 기다렸다. 드디어 차소리가 나더니 벨기에에서 다이렉트로 8시간이 넘는 운전을 하고온 프헝세즈를 만날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는 레게음악을 사랑하는 여자다. 함께 온 동승자 왈루(블랙 리트리버)도 반갑게 인사했다. 늦은 저녁이지만 즐거운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마치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 만난듯 수다는 계속됐고 프헝세즈는 프랑스어를 공부한다는 나에게 프랑스말을 가르치기 바빴다. 저녁을 먹는건지 소화를 시키는건지도 모르게 시간은 흘렀다. 늦은 저녁이지만 잠은 제 시간에 잔다. 가만히 누워서 오늘을 그리고 어제를 그리고 2014년을 돌아본다. 그렇게 2015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Posted by 찬Chan
france2015.01.05 21:09
















더블침대에서 편하게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햇살이 좋았다. 실비는 아침 일찍 빵집을 다녀왔고 바게트와 크로와상, 커피를 건내주었다. 이젠 너무나 익숙한 에스프레소다. 한국에서는 에스프레소 한잔만 먹어도 심장이 벌렁거려 혼났는데 여기서는 쑥쑥 잘만들어간다. 야외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햇살을 느끼는 기분 좋은 아침이다. 한국시간 크리스마스 저녁인 지금 처음으로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다. 이렇게 끊기지 않고 통화할 수 있는게 신기하기만 했다. 짧아진 머리를 들이밀며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쳤다. 엄마는 얼굴좋아보인다며 인사를 했고 실비 가족과 봉주~하며 인사도 나눴다.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크리스마스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을 간단히 하며 실비가 작은 해변을 보여주겠다고 제안한다. 당연히 oui!를 외쳤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햇살은 좋았다. 꽁떼치즈가 들어간 그라탕으과 로제와인으로 점심을 배불리 먹은 뒤 에밀리와 곧 차를타고 출발했고 우린 좁은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실비 역시 베스트 드라이버다. 노련한 기운이 느껴진다. 요리조리 산을 올라가더니 엄청난 광경이 펼쳐진다. 바람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더욱 더 세차게 불었다. 곧 낭떠러지가 코 앞에있는 절벽에 섰고 내 시선이 닿는 모두가 바다였다. 지중해가 끝없이 펼쳐졌다. 실비가 이 곳에 대해 설명을 덧붙여줬다. Route des Crêtes(도로명) 이곳은 라시오따와 카시스를 잇는 능선도로로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절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탁트인 바다가 마치 부산의 태종대를 떠올리게 했다. 언덕 몇개를 더 넘어 고불고불 길을 달렸다. 바위에 둘러쌓인 길다란 해변에 도착했다. 실비는 이곳에 여름이 되면 친구와 해수욕을 즐기러 온다곤 했다. 미스트할(남프랑스에서 지중해로 부는 차가운 지방풍)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잠깐 둘러보기만 하고 돌아왔다.


멋진 광경을 보여준 실비에게 저녁은 언제나 옳은 불고기를 준비했다. 마지막 간장을 탈탈털었다. 점점 개선되며 맛있어지는 불고기는 화이트와인까지 첨가해 더욱 맛을 돋구었다. 레드와인과 멋진 만찬이 완성됐다.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실비에게 간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한국음식문화에 대해 영상을 통해 설명해주었더니 더욱 좋아한다. 실비는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전공을 물어보니 아라비안관련한 전공이었다. 곧 나의 이름도 아라비안으로 써주었다. 최근에는 보트조정법을 배우러 학교까지 다녔단다. 조만간 아히시아, 에밀리 두딸과 함께 크루즈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보겠다는 현실적인 꿈도 이야기했다. 우연히 만난 인연의 끈은 이렇게 조금씩 매듭을 만들고 있었다.


내일은 벨기에에서 친구가 오기로했다. 그렇다. 여기는 유럽이다.


Posted by 찬Chan
france2015.01.04 09:41























6일 동안의 draguignan(드하기뇽)에서의 만남은 특별했다. 앙뚜완에게 더 없이 고마웠다.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어젯 밤 벌써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앙뚜완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앙뚜완은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소리말라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앙뚜완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기위해 생년월일을 물었고 열심히 사주팔자를 영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앙뚜완에게 풀이를 전달했다. 내가 배운 사주팔자도 그렇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같았다. "삶은  정해져있지 않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앙뚜완은 이해한 듯이 기분좋은 웃음으로 답했고 나 또한 앙뚜완의 여행을 응원했다. 앙뚜완은 내년에 아르헨티나부터 알래스카까지 아메리카대륙을 종단할 계획이다.


이제는 짐을 많이 풀지 않는게 습관이 되서 배낭도 쉽게 정리가 됐다. 아침 공기는 차가웠지만 또 다른 만남을 알리듯 다시 태양이 강렬히 비추었고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또 다른 만남을 향해 다시 길을 나선다. 앙뚜완의 차로 편하게 기차역까지왔다. 마지막 인사를 건내고 포옹으로 못내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앙뚜완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안녕, 그리고 또 만나자!"


첫 기차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기차에 올랐다.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다들 집으로 향하느라 기차는 앉을 자리 찾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 명절에 고향내려가듯이 이곳 또한 크리스마스에는 가족곁으로 돌아갔다. 가는 내내 포도밭이 들쑥날쑥 보였다. 꼭 우리나라의 논을 보는 듯 흔하디 흔한게 여기서는 포도밭이다. 이곳 포도나무의 키는 허리춤정도 밖에 오지않는다. 특히 이 지역 주변에 많았는데 포도가 자라기 좋은 환경인 듯 했다. 여행하는 내내 여러 와이너리에 연락을 넣고 있는데 답장이 없다. 연휴라 그러녀니 하는 생각도 하지만 여전히 답없는 메일이 표류중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서쪽으로 가는 중이다. 보르도로 대표되는 프랑스 서쪽의 드넓은 포도밭은 나에게 답을 주겠거니하고...기차는 다시 지중해로 달렸다. Toulon에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La ciotat(라 시오따)는 기차에 버스를 두번이나 환승해야되는 고난이도 코스였다. 여러가지로 환승시간을 고려해야됐다. 다행스럽게도 여기 남프랑스의 시간표는 거의 정확하다. 무난히 라시오따에 도착했다. 지도를 다운받지 않아서 잠시 걱정도 했지만 여행안내소를 찾아 지도를 구했다. 라시오따의 관광정보도 덤으로 얻었다. 드디어 여행자 다운 포스를 내며 호스트의 집으로 향했다. 지도 한번 보고 100m걷고 다시보고 200m걷고, 그러다가 길을 잃었다. 처음엔 아줌마에게 두번째는 관광객에게 세번째는 할머니에게 네번째는 빵집 아줌마에게 총 6명의 프랑스인에게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을 앞에 두고도 옆집에 가서 기웃거리다가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2층집이라고는 생각하지못했던 것이다. 아히시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소녀와 에밀리라는 이름의 꼬마아이와 리트리버 올리비에가 호스트 대신 나를 맞이해주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6번째 호스트 실비가 나타났다. 실비는 도착하기 무섭게 집소개와 가족소개를 했고 자기방을 내주며 여기서 지내면 된다고 무한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에도 불편한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간단히 짐을 풀고 우린 아이들 선물을 사러 까르푸로 향했다. 가는 길에 내 소개와 지금까지 있었던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가볍게 나눴다. 그렇게 창밖의 라시오따를 잠깐씩 바라보며 좀 전에 여행객 역할은 접어두었다. 그렇다. 또 다른 일상이 시작됐다. 거리에 차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어딜가나 인산인해였다. 오늘부터 2주간의 긴 연휴가 시작되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시작됐다.


실비는 도착하자마자 아이들 선물부터 고르기 시작했다. 왜 이 선물을 고르는지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 주면서. 에밀리는 말을 좋아해서 말과 바비인형이 함께 있는 선물을, 이제 막 사춘기인 아히시아에게는 다양한 색깔이 있는 화장품을, 그리고 목록에 적힌데로 하나씩 장을 보았다. 어느새 카트는 가득찼고 트렁크를 가득채운 실비의차는 산타클로스의 마차가 된 듯했다. 집에 도착한 실비는 요령껏 아이들 선물을 숨긴채 저녁준비를 했다. 나는 디즈니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어 한껏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맞췄고 에밀리는 어느새 내품에서 잠이들었다. 아늑한 벽난로 위에는 은은한 촛불이 거실 한쪽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노엘이 왔음을 알렸다. 


실비가 준비한 특별한 아프레티프인 모히또 비슷한 칵테일로 시작한 저녁은 연어롤과 로제와인 그리고 거대한 로스트치킨이 더해져 풍성해졌다. 사실 실비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가족과 보내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외지인과 함께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번번히 미안하다는 메일을 받아야했고 그러던 중 실비와 연락이 닿은 것이다. 메시지에서부터 따뜻한 마음이 보였는데 실제로는 더욱 더 따뜻한 사람이며 예쁜 두 딸의 엄마였다. 아이들은 밥을 어디로 먹은건지 먹다말고 방으로 숨어들었다. papa noel이 오는 시간인 것이다. 매년 있었던 행사여서 그런지 실비도 자연스레 아이들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선물 꾸러미를 트리 주변에 놓았다. 양말대신 아이들 신발이 자리를 대신했다. 곧 파파노엘이 왔다갔다고 하자 아이들이 문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눈이 둥그레져서 선물을 뜯어본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들의 표정과 웃음소리를 실비는 지긋이 바라본다. 나도 괜히 덩달아 좋더라. 그렇게 따뜻한 라시오타의 첫날 밤이 지나간다.


Posted by 찬Chan
france2015.01.03 07:48

















앙뚜완 가족에게 한국요리를 선보여야 된다는 말에 잠깐 부담스러웠지만 "뭐 하면되지"하는 생각으로 찜닭을 하기로 했다. 아침일찍부터 장을봐서 앙뚜완 집으로 향했다. 그래봤자 1만원도 안나온다. 이제 요령껏 사는 법을 알았다. 여기서 요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몇일 전에 했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일단 숨겨진 주방 도구들 부터 찾아내었고 각종 향신료와 식재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의외로 깔끔해 보이는 주방 시스템은 능률면에서 좀 불편했다. 모든 것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 넣어야 되는 불편함 때문이기도 했고 동선이 꽤나 길었다. 일자 주방 시스템에 익숙해서 그런지 팔 닿은 곳에 모든게 있다보니깐 그랬을꺼라 생각해본다. 


여튼 닭 껍질부터 벗기고 토막내는게 첫 번째 미션이다. 칼날이 제대로 서있어서 그런지 껍질은 순식간에 벗겨냈다. 그하스 북쪽에 묵었을 떄 했던 생각이 났다. 그 때는 닭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었는데 오늘은 관절을 잘 찾아서 몇 번의 칼질로 모두 해체했다. 뜨거운물에 살짝 데치고 당근, 감자, 쥬키니, 양파를 다듬었다. 앙뚜완과 앙뚜완의 엄마가 왔고 바게트에 염장한 생햄(잠봉)과 버터로 가벼운 듯 든든한 점심을 했다. 내가 벌려놓은 식기들을 앙뚜완 엄마가 오자마자 요리조리 정리하더니 주방은 다시 깔끔해졌다. 식사를 하면서 특별한 한국요리를 맛볼 저녁식사 인원은 배로 늘어서 6명이 되었다. 결국 밥도 잔뜩하고 국물도 조금 더 만들어 양을 늘렸고, 비장의 무기인 당면 덕분에 한껏 양을 늘릴 수 있었다. 닭은 여전히 한 마리다. 미리 준비해 놓은 찜닭을 뒤로하고 언젠가 살아보고 싶던 대궐 같은 집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져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고 정원을 돌아다녀보기도하고 한참을 그랬더니 저녁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앙뚜완 동생 쥴과 여자친구 킴이 왔고 곧 앙뚜완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가 도착했다. 오늘 일이 늦게끝나는 앙뚜완을 기다리며 우린 아프레티프를 즐겼다. 위스키 한잔으로 위장을 뜨끈하게 달궜다. 곧 앙뚜완이 친구한명을 더 달고 들어왔다. 우린 총 7명이 되었다. 이 대단한 한국음식을 맛보기 위해 6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최대한 있어보이게 하기 넓은 그릇에 닭을 밑에 깔고 당면을 중간에 깔고 채소로 덮어버렸다. 일단 비주얼은 성공이다. 이번엔 내가 6명의 접시에 찜닭을 옮기는 차례다. 고기가 많지 않지만 최대한 균형있게 주느라 진땀을 뺐다. 식사는 시작됐고 반응은 좋았다. 곧 박수가 나왔고 나는 몸둘바를 몰랐다. 닭 한 마리로 이렇게 사기를 쳤으니...;;;일단 한국요리를 했다는 것에 큰 점수를 받은 듯 하다.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여서 즐거웠다.


앙뚜완의 엄마는 나에게 프랑스 욕을 가르쳐 주었고 내가 따라하자 더 화기애애해졌다;;;치즈와 바게트로 못다한 식사가 이어졌고 점심에 앙뚜완 엄마가 만들어 놓은 디저트와 과일, 커피 그리고 레몬첼로로 끝을 보았다. grasse에서 부터 접한 레몬첼로라는 하드리큐류는 남부 프랑스 어딜가나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선 바로 옆에 있는 앙뚜완 할아버지가 만든 레몬첼로를 맛 볼 수 있었다. 불어로 시트홍이라고 불리는 레몬을 우리나라의 매실주 처럼 만든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레시피도 전수받고 우린 다 같이 포토타임을 가졌다. 식탁이 너무 커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셀카봉이 또 한 건 했다.


무르익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앙뚜완의 친구와 함께 펍으로 자리를 이어나갔다. 최근에 생긴 아이리쉬펍은 작은 도시 드하기뇽에서는 꽤 괜찮은 술집으로 통했다. 저번에 방문했을 떄와 다르게 오늘은 모두 앙뚜완이 친구들만 있는 듯 했다. 인사하느라 진을 뺐다. 한국인을 처음보는 친구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를 설명했고 맞장구치느라 안되는 불어에 영어까지 총동원했다. 펍은 무려 새벽1시에 문을 닫았다. 대여섯명의 친구들과 함께 앙뚜완의 집에서 수다가 이어졌다. 어느새 지금 여행을 하는건지 일상을 살고 있는건지 헷갈릴무렵 한통의 문자가 왔다.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다행히 큰 일은 아니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여기는 한국과 8시간의 시간차가 있는 프랑스다.

Posted by 찬Chan
france2015.01.02 18:01
















홀리데이지만 엄연히 월요일이다. 앙뚜완은 파트타임일로 나가야되서 일찍 일어났다. 그래도 9시다;;;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부터 계속 머리가 신경쓰여서 한참을 참아내다가 앙뚜완에게 괜찮은 미용실좀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알았다며 따라오란다. 쫄래쫄래 따라갔더니 자기가 가는 미용실이라며 추천해줬다. 예약이 많은지 오후4시에 예약을 해야했다. 어떻게 머리를 자를까 생각하다가 앙뚜완 머리가 마음에 들어서 앙뚜완에게 말했더니 짤막한 쪽지를 건내받았다. 해석하기론 옆머리를 짧게 밀고 나머지 부분은 쳐내는 내용이었다. 벌써 5일째 같이 살아서 그런지 이제는 굳건한 믿음이 생겼다. 오전에는 홀로 draguignan(드하기뇽)중심지를 천천히 햇빛을 맞으며 걸었다. 이름에서 느껴지겠지만 드래곤과 관련 있는 지역이다. 드래곤과 싸웠던 전설이 전해진다. 익숙해진 길거리여서 좁은 골목으로도 들어가보고 일부러 길을 헤매기도했다. 종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가기도 하고, 지긋이 한 곳을 쳐다보기도 하며.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찬 공기가 점점 코와 귀로 스며드는 기운이 느껴져 집으로 돌아왔다.


앙뚜완이 점심때 맞춰서 들어왔고 어제 왕창 만들어 놓은 카레와 바케트, 스테이크, 파스타와 순식간에 흡입했다. 파스타에 카레도 꽤나 잘 어울리더라. 앙뚜완은 다시 일하러 나갔다. 밀렸던 일기를 쓰고 해외에 나가있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오스트레일리아. 우리는 이름대신 각자의 나라를 호명하며 안부를 전했다. 다들 잘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에너지를 뽐내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 문득 나는 지금 프랑스에서 잘 살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며...예약시간이 다되어서 급하게 나갔다. 다행히 아직 전 손님이 마무리가 덜 되어서 10분정도 기다렸다. 내가 다녔던 많은 미용실들이 회전율을 높이기위해 기계같이 빨리 자르는데 익숙했다면 여기는 1인 미용실을 예약한듯했다. 물론 여기는 작은 도시라 그렇기도 했다. 보란듯이 앙뚜완이 적어준 쪽지를 건내며 이렇게 잘라달라고 했다. 늘 그렇듯 나는 미용실에서 항상 눈을 감는다. 머리카락이 들어갈까 그런것도 있지만 미용사가 더 맘편히 잘랐으면 하는 바램에 그런것도 있다. 눈을 감았고 옆머리가 짧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바리깡이 왔다 갔다하며 손님들도 들락날락했다. 서로의 안부도 물으며 예약까지 멀티태스킹도 이런 멀티태스킹이 없다. 뭐 프랑스니깐. 윗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때 뭔가 내 이름 같은 것이 들렸다. 


"짠!"...."짠!"....눈을 떴다. 흐릿하게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어제 만났던 앙뚜완의 할아버지다. 반가운 마음에 몸부터 움직인다. 서로의 안면을 제대로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가위질이 시작됐다. 근데 끊임없다....왜 계속 자를까? 하며 눈을 떴는데 이미 반삭이 됐다. 사실 반삭으로 할까 조금 더 스타일을 살릴까 고민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니 그냥 체념이 되었다. 근데 구렛나루는 왜 가로로 딱 맞춰 자르는지 모르곘다. 곡선을 강조하며 다시 부탁하고 가위는 앙뚜완 할아버지로 넘어갔다. 아마도 이 미용실에 가족 모두가 다니는듯했다. 앙뚜완 할아버지가 자신의 머리 색깔과 내 머리 색깔을 바꾸면 어떻겠냐는 조크를 던져서 입가엔 다시 미소가 돌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저녁준비를 했다. 


바트가 계속 매운맛을 찾길래 고추장 듬뿍바른 돼지고기를 재워놨다. 해가 지고 방안은 다시 썰렁해졌다. 곧 앙뚜완과 바트가 왔고 요리는 시작되었다. 고추장 듬뿍바른 돼지고기는 칼로 한참 두들겨놔서 부드러웠다. 강한불에 빠르게 익혀 1~2분 열기를 가둬놓고 삶은 감자와 샐러드로 플레이트를 채웠다. 정성스레 한 플레이트씩 서빙됐고 처음엔 맛있게 먹던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언어와 물을 찾았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제대로 맛본 것이다. 우리만의 언어로 한참을 공감하며 웃어댔다. 한참을 떠들다가 자정무렵엔 또 다른 친구가 찾아왔다. 앙뚜완이 전부터 베프가 온다고 했는데 드디어 오늘 도착했다. 럼칵테일 한잔과 신나는 음악이 곁들어져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한잔하러 나간 펍은 문을 굳게 닫아 우릴 아쉽게 했다. 아쉬을 뒤로하고 내일 있을 결전의 날이 기다려졌다. 저녁을 맛본 앙뚜완이 내일 우리 가족에게도 한국요리를 보여주지 않겠냐는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살짝 부담됐다.

Posted by 찬Chan
france2015.01.01 10:47














늦은 밤을 보내고 완전 뻗었는데 아침 일찍 바트가 오더니 나가자고 한다. 쿨쿨 자고 있던 나를 앙뚜완이 깨우고 그제서야 어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앙뚜완의 차를 탔다. 꺄홀과 비훠를 픽업해 몇 시간도 안되어 다시 모였다. 벌써 몇 일째 만나서 그런지 오래된 친구들 같다. 바트는 오토바이를, 나머지는 차를 타고 이동한다. 오토바이 뒤에 타보겠냐는 말에 헬맷을 써봤는데 ;;; 안들어간다. 어이 없어서 잠깐 피식했다. 너무 아쉽게도 차를 타야만 했다. 우린 출발했고, 곧 산을 넘어 광활한 대지와 산들과 마주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올 법한 그림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크진 않지만 적당한 나무들이 가로수길을 가득 채웠고 올리브나무들이 곳곳에서 반겼다. 앙뚜완의 드라이빙 실력은 대단했는데 수동기어를 자연스레 바꿔가며 구불구불길을 부드럽게 넘어갔다. 1시간 정도 달렸는데 우리나라로치면 서울에서 수원까지 거리를 달린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멀리 올 줄은 몰랐는데 옆에서 듬직하게 운전하고 있는 앙뚜완에게 고맙기 그지없다. 나에게 무엇 하나 더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게 보여서 더욱 그랬다.


곧 에메랄드빛의 큰 호수가 펼쳐졌고 그 물줄기가 나오는 협곡에 다다렀다. 말로해서 무엇하겠나. 벌써 입이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래져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Gorge de Verdon 유럽에서 가장 웅장합 협곡이자 유럽의 그랜드캐년이다. 셀카봉이 톡톡한 역할을 해줘서 우리 모두 이 곳에서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근처 작은 마을로 들어선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레스트랑에서 피자와 와인으로 따뜻한 점심을 즐기고 다시 1시간여를 달려 돌아왔다. 고마운 나는 앙티브 아시안마트에서 득템한 일본카레고형으로 저녁준비를 했다. 배불리 저녁까지 먹고 한국어로 친구들 이름을 써주었다. 굉장히 좋아라해서 한글도 몇개 알려주었는데 앙뚜완이 특히 발음이 좋았다. 친구들은 곧 “안녕"을 남발하며 추임새로 쓰기 시작했다.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신기하고 재밌었다. 곧 바트는 자신의 밴드 스티커를 주었고 나도 내 술병에 붙이던 스티커를 주었다. 나는 노트북에 딱 붙였고 바트는 자신의 헬맷에 붙였다. draguignan에 방문한다면 내 얼굴이 붙어있는 스티커를 거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할것 없는 특별한 하루가 오늘 또 지나가고 있다.

Posted by 찬Chan
france2014.12.30 23:18














오늘도 특별히 할일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국에서 쉴새없이 바쁘게 지내온 까닭일까? 이곳에서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앙뚜완은 아침 일찍 일을 하러 나갔고 나는 그 동안 밀렸던 일상을 끄적여본다. 오늘 점심은 앙뚜완 가족과 함께하기로 했다. 매 주 토요일이면 앙뚜완 할아버지,할머니 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다고 한다. 얘기만 들어도 매우 화목한 가정이라는 느낌이 온다. 12시 땡 맞춰서 앙뚜완이 돌아왔고, 곧 앙뚜완 동생 Jules (쥴)과 쥴의 여자친구 Kim (킴)과 만났다.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이름이 킴이라길래 너무 신기해서 왜 킴이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란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되지만 어쨌든 친근감이 확 든다.


함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올리브 나무와 수영장, 그리고 햇볕이 잘 드는 프로방스풍의 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미 앙뚜완의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은 올리브 나무 앞 계단에서 Apéritif (식전 식욕촉진 술먹는 시간) 를 즐기고 있었다. 이제는 비주를 안하면 인사를 안하는 것 같다. 친근감은 비주로 부터 생기는 듯하다. 특이한 술 한잔을 먹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곧 앙뚜완의 엄마도 와서 우린 한껏 태양을 받으며 아페리티프를 즐겼다. 할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길래 어찌나 궁금하던지 종종 쫒아 들어가서 무엇을 만드냐고 물어봤다. 볼로네이즈 파스타라며 소개를 해주는 할머니는 펄펄 끓는물에 파스타를 무지막지하게 넣으며 한껏 웃음지었다. 냄새만 맡아도 군침도는 향기를 맘껏 맡고 바로 옆 10명도 거뜬히 앉을 수 있는 테이블로 눈길을 돌렸다. 셋팅이 킨포크 저리가라다.


곧 자리에 앉고 소세지와 버터, 바게트로 식사가 시작됐다. 이제는 좀 고쳐진것같은데 나는 먹을 때 무지하게 소리를 내면서 먹는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특히 앙뚜완 엄마가 굉장히 싫어한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정말 조심스럽게 먹느라 혼났다. 하지만 소리만 제외하곤 손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자유로웠다. 이게 프렌치 스타일인가 보다. 쥴이 할머니를 도와 볼로네이즈 파스타를 가져왔다. 첫 느낌은 ‘저걸 다 누가 먹나?” “아이고 아까워라 다 불겠네…” 그 정도로 엄청난 양을 자랑했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고 와인과 마리아쥬 또한 멋드러졌다. 예상했던데로 반 이상이 남은 볼로네이즈호 앞에 우리는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다. 재밌는 경험도 할 수 있었는데 식사도중에 나를 제외하고 갑자기 다들 특별한 박수치기를 시작했다. 이건 뭐지 하며 나도 곧 따라했는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준 할머니에게 주는 박수였다. 박수만쳤을 뿐인데 식사는 더욱 더 즐거워 졌다. 식후에 과일과 커피가 뒤를 이었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와 할머니의 수다가 한층 더해졌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비슷한가보다.


화목한 가족을 둔 앙뚜완 덕분에 즐거운 한 때를 보냈지만 어딘가 모르게 한쪽 구석이 허전해졌다. 할머니의 잔소리, 엄마의 요리하는 모습, 먹성 좋은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올 해 그렇게 많은 시간동안 요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즐거운 식사자리 한번 마련하지 못한게 이내 마음에 걸렸다. 밤은 빠르게 찾아왔고 거리는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고 알리듯 빛의 향연이 이어졌다. 파파노엘(산타클로스)이 잘 찾아올 수 있도록


Posted by 찬Chan
france2014.12.27 18:39



















꽤나 피로했는지 점심이 다되서야 일어났다. 밀린 빨래를 해야되서 앙뚜완에게 말했더니 자기 부모님집으로 가자고 한다. non(no)은 없다. 언능 oui(yes) merci!를 외친 후 길을 나섰다. 가기전에 부모님을 만나러 옷가게로 향했다. 여성복을 파는 옷가게에서 앙뚜완의 엄마를 만났고, 남성복을 파는 옷가게에서 앙뚜완의 아빠를 만났다. 순식간에 내가 아는 장소가 두군데나 생겼다. 환환미소로 맞이해준 앙뚜완 부모님 덕분에 기분좋은 아침을 맞이하며 집으로 향했다. 16살때부터 운전을 할 수 있다는 프랑스에서 앙뚜완은 18살에 운전면허를 땄고 우리는 지금 차로 이동중이다. 시내를 약간 벗어나 단독주택이 펼쳐진 곳에 도착했다. 리모콘으로 대문을 여는것부터 신기했는데 집은 더 신기했다. 수영장이 있고 정원은 100평쯤 되는듯했다. 주방은 너무 깔끔했고, 거실은 부띠크호텔에 온 듯 자연스레 꾸며져 있었다. 앙뚜완 어머니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집이었다.


어쨌든 빨래를 세탁기에 놓고 앙뚜완은 파스타를 해주었다. 우리나라 등갈비 같은 것이 들어간 파스타여서 독특한듯 익숙했다. 우린 곳 올리브 나무가 있는 야외테이블에서 수영장과 그 넘어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한 동안 프로방스의 태양을 느꼈고, 수 많은 비행기들이 궤적을 그리며 파란하늘을 수놓았다. 지중해가 가까워서 그런지 이 곳 하늘은 굉장히 맑아서 비행기들이 지나가는 궤적들이 한눈에 보인다. 쇼콜라로 디저트까지 마치고 우린 다시 앙뚜완의 집으로 향했다.


저녁쯔음 다시 바트와 꺄홀과 만났다. 꺄홀의 동생 Virginie (비훠)도 합류해 시내 중심의 크리스마스마켓을 둘러보고 까페에 앉아 맥주한잔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비훠는 법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오늘 마지막 시험을 치뤘는지 장문의 글을 보여주었다. 고전법률을 자신의 생각으로 표현하는 시험지는 매력있었다. 그래도 냉정하게 점수는 매겨지더라 왼쪽 상단에 나로써는 판단할 수 없는 점수가 명확히 적혀있었다. 앙뚜완은 테니스코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뒤 일을 하러 떠났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저녁일정은 7시에 열리는 갤러리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전시이름은 Lumières – Exposition de Chimères et Compagnie 빛과 과련된 무엇이구나라는 것만 인지하고 도착한 그곳은 옛 교회였다. 너무 오래되고 방치되어서 실제로 제 구실을 못했던 교회는 draguignan시에서 리모델링해서 내부의 공간을 현재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었다. 작은 도시라 이런 이벤트가 자주 있는것이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방문했다. 바트는 영상을 찍었고 꺄홀은 나를 안내해주며 이것 저것 설명해주었다. 곧 그녀의 엄마를 만났고, draguignan의 시장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꺄홀의 활발한 성격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곧 행사가 시작되었다. 시장이 마이크를 잡았고 그 옆으로 그녀의 엄마가 자리했다. 뭐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꺄홀이 설명을 해주었다. 이 곳 draguignan의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다는 엄마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모든 상황들이 정리가 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찾아들었고 행사의 가벼운 설명과 함께 화이트,레드, 그리고 로제와인이 끊임없이 공급되었다. 이 곳 금방에서 만들어졌다는 와인은 순식간에 내 몸속으로 흡입되었다. 여기서는 로제와인을 더 선호하는 듯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화이트 와인이 더 좋더라. 시민들이 모두 와인잔을 들고 전시장을 자유롭게 둘러보는 시간이 이어졌고, 서로의 안부와 함께 전시이야기가 갤러리 안을 가득채웠다.


곧 오늘 전시를 준비한 아티스트와도 인사를 나누었고 나와 꺄홀은 바트를 도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 첫 번째 직업이 카메라맨 보조였던 만큼 아이폰카메라의 조명을 켜서 인터뷰를 도왔다. 영상은 draguignan에서 일어나는 news를 담는 것이었고 바트가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상찍는 수준이 보통이상이다. 곧 앙뚜완이 돌아왔고 우린 바트의 아기자기한( 우리나라의 티코같은 ) 차를 함께타고 앙뚜완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정석이 되버린 불고기요리는 이 곳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니스에서 구입한 진간장과 참기름, 당면은 정말 제 역할을 120% 발휘했다. 느즈막히 한국요리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우리는 즐거운 음악, 이야기로 방안을 온기를 높여갔다.

Posted by 찬Chan
france2014.12.26 22:52













이틀간 아무생각 없이 정말 편하게 쉬었다. 100m안에 아시안마트가 있었다는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얼큰한 라면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오늘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저녁에 만나기로해서 최대한 시간을 맞추려고 느즈막히 집을 나섰다. Draguignan이라는 곳은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고 이 곳 사람들도 작은 도시라며 볼 것 없다는 곳이어서 아무 기대도 없이 떠날 수 있었다. 오히려 더 좋았다. 더군다나 호스트의 마인드가 꽤나 마음에 들어서 한껏 기대도되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기차표도 프랑스어로 구입하고 기차도 제대로 탄듯했다.^^;;; 아니 내 생각은 제대로 탄거였다. 귀에 거슬리는 Grasse라는 말은 결국 대참사를 불러왔는데 깐느에서 직진해야되는 기차는 내가 전에 왔던 Grasse로 향하고 있었다. 저녁에 출발한지라 밖이 보이지도 않아 어정쩡하는 사이 Grasse에 점점 다다랐다. 결국 기관사에게 이야기해서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호스트와 약속한 시간은 다가오는데 와이파이는 안터지고 참...그래도 Grasse에서 경험이 있는지라 불안함보단 그저 보내야되는 시간임을 알고있었다. 깐느로 돌아가 다시 Draguignan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이번엔 기차에 오르는 프랑스사람에게도 물어보아 분명한 확답도 받았으니 확실하다. 1시간쯤 달려 도착한 Fréjus 에서 기차에 오르며 물어보았던 프랑스 사람이 다가와 나는 부산을 알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한국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부산을 안다고 하니 꽤나 반가웠다. 다음역이 내가 내릴 곳이라고 알려주며 곧 그는 떠났다. 거긴 볼 것 없는 작은 도시라는 말을 남긴채. 내가 도착한 les arc draguignan은 정말 사람이 드문 곳이었다. 


얼마나 작은 도시일까 점점 기대도 됐지만 호스트와의 약속시간이 어긋나서 점점 조급해진것도 사실이었다.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와 영어가 가능한 승객의 도움 덕분에 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저녁 21시였다. 길거리엔 간혹가다 관광객들이 호텔에서 나와 길거리를 배회했다. 약속장소에 왔는데 근처에 집이 어디있는지 찾지못해 거리에 지나가는 행인에게 전화좀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어이쿠야 아직도 내 발음은 영어에 가까운가보다. 소통이 될듯 안될듯 하다가 지나가던 영어가 가능한 두 여인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호스트와 연결이 될 수 있었다. 1분도 안걸려 호스트가 나왔고 우린 깊은 인사를 나누었다. Je suis Corée. Je m'appel chan 뭐 항상하는 말이지만. 나는 코리안이고 내 이름은 찬이야. 호스트의 이름은 Antoine 앙뚜완, 1시간을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렸다는 말에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배고픔은 감출 수 없었다. 염치없이 도착하자마자 앙뚜완이 만들어준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해치웠다.


앙뚜완의 친구도 함께 있었는데 Batiste 바티스트(바트) 바트는 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밴드의 베이스를 맡고있었다. 곧 음악을 들었고, 곧 팬이되었다. 너무 기대를 안했던 것일까? 몇 곡을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밴드 이름은 이 지역 금방에서 활동하는 OnX , 너구리가 상징인 이 밴드의 스티커가 앙뚜완의 집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자정을 조금 넘겼을 때 Caroline (꺄홀) 이라는 친구가 찾아왔다. 루마니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녀는 프랑스 특유의 발랄한 억양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와서 느끼는건 사람들이 음악을 참 많이 듣는다. 내가 너무 안들은걸까?....어쨌든 앙뚜완, 바트, 꺄홀 모두 좋은 인상과 좋은 품성을 지닌 것 같았다. 집은 인상적이었다. 브라질 국기가 한쪽 벽면에 걸려있었고, 동양적인 카페트가 바닥에 깔려있고, 담배곽으로 장식한 냉장고가 눈에 확 띄었다. 빵빵한 스피커는 보너스다. 내일 뭐 할꺼냐고 묻는 말에 여전히 다음날 플랜을 정하지 않는 나는 다시 질문했다. 내일 뭐하면 좋을까?


Posted by 찬Chan
france2014.12.24 09:44





더할나위없이 편하게 지내고 있는 지금이 이상할 정도로 느껴지는 아침이다. 로렌은 출근했고 필립은 임파선이 잔뜩 부어서 하루종일 쓰러져있다. 여전히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마르쉐가 오전에만 열기때문에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앙티브라는 도시는 작아서 참 좋다. 그러고 보면 니스가 정말 큰 도시였다. 몇 걸음만에 어제 보아두었던 마르쉐에 도착했다. 특이한건 없다. 다만 마르쉐에 가는건 아무런 말없이 기계적으로 계산만 하는 대형마트보다 사람간의 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 시장과 비슷하다. 종류가 다를뿐, 채소는 파프리카와 대파가 상대적으로 크고 당근과 무가 상대적으로 작은게 좀 다르긴 하다. 아티쵸크와 아보카도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햄과 소세지, 치즈, 각종 고기류, 디저트류, 꽃이 등장한다. 물론 훨씬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제는 불고기가 메인메뉴가 되었다. 두번이나 선보였으니 당연히 잘할 자신이 있었고 한국적인 맛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메뉴였다. 진간장과 참기름, 당면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능하다. 니스에서의 경험으로 소고기 600g을 샀고, 당근, 대파 등을 적당히 구입해서 돌아왔다. 이렇게 10유로 정도가 드는데 낯선 나를 받아준 친구들에게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을 수 있는 돈이기에 아깝단 생각은 안든다. 다만 한국적인 맛을 어떻게 하면 더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이다. 한국에서는 불고기는 생각도 안했는데 말이다.


로렌이 칵테일을 만들어주었고 불고기와도 잘 어우러졌다. 역시 간장은 좀 통한다. 맛있다며 고마워하는 로렌을 보며 아침 일찍 마르쉐에 다녀온 보람을 느낀다. 식사를 마치고 여행, 삶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감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항상 다음 물음이 생긴다. 또는 의문이었던 것들이 해결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해결된 것들 중 하나는 조급한 마음이며 다음 물음 또한 조급한 마음이다. 다음 여정지인 Draguignan의 호스트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추스른다. 이제는 장소보단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지나왔던 Nice의 클레망, Grasse의 마이클, 에릭, 리차드, Antibes의 로렌.


너무 서투른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프랑스어를 공부해본다.

Posted by 찬Chan